좋은글

#005 시간을 달라

푸른하늘별빛_ 2008. 10. 27. 00:39



당신은 모든 것에 있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.
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시간,
약속 장소에 나가는 시간,
비디오로 본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서도
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당신은 스톱 버튼을 누르며,
삼지어 전화 받을 때도 벨이 다섯 번 이상 울린 후에야
겨우 받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.
그러니 당신에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.
어쩌면 사랑하는 일에도 당신은 똑같은 속도를 고집할지도 모른다.
그게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.
그 시간을 송두리째 나에게 내줄 수 있냐는 거다.
그래서 나는 당신이 내준 그 시간 동안
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겠냐는 거다.
당신이 시간을 사용하는 것처럼 늘 익숙하고 늘 당당한 것이 아니라
조금은 애절하고 조금은 울컥하는, 그 무엇이었으면 하는 거다.

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.
나와 사랑을 시작할 거라면 그냥 나에게 이렇게 말 붙이면 되는 거다.

「 넌 뭘 좋아해 ?
    음, 난 TV를 크게 켜놓고 만화책 보는 시간이랑,
    친구가 사준 창가 화분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
    유리컵에 담아두는 일이랑,
    음,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해.  너무 너무 좋아해. 」

아마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, 공중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와
내 어깨에 앉을 것이다. 그리고 그 새는 내 귀에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.
「 이제 됐어. 그녀가 침묵을 깨고, 이제 시작한 거야. 축하한다구. 」
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.
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,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.
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
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이에 이렇게 쓰는 것.
「 사랑해. 」

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달라.
나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.